
오래 보는 일
파이프갤러리는 7월 15일부터 8월 8일까지 이수진의 개인전 《오래 보는 일》을 개최한다. 이수진은 일상의 사물과 장면을 통해 불안, 긴장, 망설임처럼 쉽게 규정되지 않는 감각을 회화 안에서 어떻게 드러낼 수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초기에는 영화의 장면을 재구성하거나 인물의 일부를 생략하고 서사의 단서를 지우는 방식을 통해 특정한 사건보다 설명되지 않는 정서를 화면에 남기고자 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관심이 감정 자체보다 감정이 사물과 장면을 통해 드러나는 방식으로 확장되면서, 하나의 대상을 오래 바라보고 반복해서 관찰하는 과정 속에서 감각이 어떤 형상으로 남을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있다. 작가는 카탈로그나 매뉴얼에 삽입된 익명의 이미지부터 식탁 위의 컵, 강아지가 가지고 놀던 공, 어머니가 깎아놓은 사과처럼 일상에서 마주하는 평범한 사물들을 오랜 시간 응시한다. 그러한 관찰을 통해 작가는 사물과 자신 사이에 축적된 시간과 감각을 화면에 담아내며, 평범한 대상들은 새로운 존재감과 정서를 지닌 대상이 된다.
전시 제목 《오래 보는 일》은 작가의 작업 태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오래 본다'는 것은 대상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거나 더 많은 정보를 얻는 행위가 아니다. 익숙한 사물을 반복해서 바라보는 동안 이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감각과 관계를 발견하고, 하나의 의미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상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가깝다. 이수진은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 대신 천천히 응시되는 화면을 지향하며, 화면 안에 고요한 긴장과 유예된 시간을 머물게 한다. 이때 이수진의 회화는 쉽게 언어화되지 않는 감각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오래 바라본 끝에 드러나는 미세한 변화와 불확실성은 그의 회화가 구축하는 중요한 시간성이자 존재 방식이다.
이번 전시에서 이수진은 정물과 인물, 그리고 과정의 시간을 담아낸 회화들을 통해 이전보다 확장된 작업 세계를 선보인다. 대표작인 〈반죽 연습〉 연작은 완성 이전의 상태에 머무는 반죽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며, 변화하는 형태와 손의 흔적이 공존하는 잠정적인 시간을 화면에 담아낸다.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반죽은 어느 한순간에도 고정되지 않는 삶의 모습처럼, 언어로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감각을 드러낸다.이러한 반복의 과정 속에서 미래의 불확실성은 더 이상 두렵고 위태로운 대상이 아니라, 삶과 세계를 사유하기 위한 조건으로 전환된다. 이처럼 회화는 완결된 결과보다 변화하는 과정과 감각을 오래 붙드는 장소가 되며, 작가는 관람자에게도 그 유예된 시간을 천천히 경험할 것을 제안한다.
이러한 시선은 〈테니스공이 있는 정물〉에서도 이어진다. 반려견이 오랫동안 가지고 놀던 테니스공을 실제보다 크게 확대해 그린 이 작품은 함께했던 시간의 기억을 환기하는 동시에,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조용히 응시한다. 작가는 살아 있는 존재의 흔적이 담긴 사물을 화면에 옮김으로써 아직 오지 않은 상실을 미리 마주하고, 그것을 회피하기보다 받아들이려는 태도를 드러낸다. 익숙한 사물은 더 이상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삶의 유한함과 관계의 시간을 품은 대상으로 자리하며, 그의 회화는 기억과 애도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이수진의 회화는 무엇을 보여주는가보다 어떻게 바라보게 하는가에 주목한다. 그의 화면은 하나의 결론이나 해석으로 닫히기보다, 감각이 머무는 열린 상태를 유지한다. 오래 바라보는 동안 익숙한 사물은 새로운 존재감을 드러내고, 화면은 기억과 감정, 시간이 조용히 공존하는 공간이 된다. 이번 전시는 사물을 천천히 바라보는 일이 익숙한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제안하며, 관람자에게도 그 감각의 시간을 함께 경험하도록 이끈다.